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인물 12제자 중에 빌립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빌립-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1. 하나님 보기를 원함
1)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빌립(고전 3:1-2, 삿 6:37-39)
고전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삿 6: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삿 6: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삿 6: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빌립은 매우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벳새다 광야에서 일어난 오병이어의 기적과 관련된 빌립의 역할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그는 무리들의 식사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에 적어도 200 데나리온은 있어야 무리들의 식사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빌립의 신앙관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즉 빌립은 주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신앙 중심이라기보다는 이성 중심이요, 지식 중심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빌립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신앙관이 빌립의 심성 저변에 깔려 있었기에, 그는 지금 예수님이 잠깐 후에는 하나님에게로 가신다는 말씀(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듣고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지식 중심, 이성 중심, 현실 중심의 신앙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보고서야 믿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이는 아직 초보적이요, 유아적인 신앙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매우 연약한 신앙임을 알아야 합니다.
2) 보고서 믿으려는 인간의 심성(요 20:29, 히 11:1, 롬 1:30)
요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언니
롬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빌립이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한 데는 무엇이든지 보아야 믿을 수 있는 인간의 연약하고 유한한 심성이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이런 마음 상태는 사실 구약 최고의 민족 지도자요, 선지자며, 예언자인 모세에게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역시도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뒷모습을 얼핏 보여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죄악 가운데 태어나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은 결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보는 자는 결코 죽음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 선지지자 이사야는 소명을 받는 도중 성전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목도하고는 큰 두려움에 휩싸인 적이 있었습니다. 부정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수호천사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아니라, 그 수호천사를 본 것만도 인간에게는 과분한 일이요, 또한 금지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와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노라는 도마를 향해, 주님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욱 복되다고 교훈하셨습니다.
2. 예수님이 하나님이심
1) 하나님과 일체이신 예수(창 1:26, 창 11:7, 요 14:26)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 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예수님은 빌립에게 당신이 곧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일체이시고, 또한 한 분이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삼위일체 교리를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분이십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기독교의 독창적이고, 유일하며,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 교리는 기독교를 지탱하는 매우 핵심적인 교리입니다.
이런 사실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그 대표적 사례는 천지 창조 시에 역사하신 하나님이 복수 형태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러기에 빌립은 주님을 보았고, 주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이상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삼위 하나님 가운데 한 분이신 성령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과 구원으로의 초대를 통해 하나님을 듣고 보고 발견하게 됩니다.
2) 예수를 통해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요 15:7-8, 빌 2:6)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시고 또한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시는 궁극적인 이유는 이들 인생들로부터 영원토록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이런 사실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번 문항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광을, 에수님을 통해 받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절). 즉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되, 다른 어떤 세상적 수단이나 방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를 통해,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 구원 역사를 믿는 성도들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서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주님과 하나님이 불가분의 관계, 즉 일체가 되심을 분명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3. 참된 믿음
1) 성령을 통해 가능함(요 14:16-17)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빌립의 질문에 대해 당신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심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제 빌립에게 보혜사 성령을 받을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육안으로 하나님을 보기 원하는 빌립의 신앙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 말입니다. 또한 참된 믿음은 성령을 받고 그 성령의 세밀한 음성에 겸손히 순종할 때만이 가능함을 교훈해 줍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비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또한 그분은 이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는 지혜의 영(靈)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참된 믿음을 갖기 원하는 자는 성령의 도움과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2) 사랑을 실천함(요일 4:12)
요일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에수님은 하나님을 보기 원하는 빌립과 주변에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을 보기 원하는 자, 그래서 진실된 신앙을 갖기 원하는 자는 눈으로 하나님을 보려고 애쓰지 말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의 실천적 삶을 살게 될 때 우리는 그 가운데서 근본 본체가 사랑이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실체를 분명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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