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다니엘 1장 강해에서 다니엘의 믿음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목: 뜻을 정한 다니엘의 믿음
말씀: 다니엘 1:1-21
요절: 다니엘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많은 사람들이 다니엘서를 종말에 대한 예언서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장차 올 사건들에 대한 예언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몇 사람의 아름다운 믿음의 삶을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장은 다니엘이 살던 시대의 역사적인 배경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
려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황은 가장 절망적이고 비참하며 그 역사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니엘은 무엇을 했습니까? 또한 하나님은 이런 다니엘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바벨론 궁중 장학생이 된 다니엘과 그 친구들 (1-7)
1절을 보십시오.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당시 유대는 여호야김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국제 정세는 애굽은 점점 힘이 약해지고 신생 바벨론이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를 치기 위해 유대 땅을 통과하고자 할 때 요시야 왕이 이를 막기 위해 싸우다가 전사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의 서거로 유다의 형편은 더욱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이에 애굽은 요시야 왕 대신에 그의 아들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결국 신생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이제 여호야김은 바벨론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삼 년 만에 바벨론을 배반하였습니다. 이때 바벨론이 군대를 일으켜 유다를 침공 하였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예루살렘을 에워싸서 많은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하였습니다. 성도 예루살렘은 불에 타 재로 변하였습니다. 성전은 훼파되고 성전의 기구 얼마도 느부갓네살에 의해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옮겨졌습니다. 왜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일어났을까요? 2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저자는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보실 때 그들은 타락하였고 무가치해졌습니다. 그들은 본래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언약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온 땅에 전파하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 한 분을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은혜는 그들에게 말할 수 없이 큰 은혜였습니다. 노예 백성으로 죄의 종노릇 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는 거룩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만 주시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는 이 은혜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신명기 6:5, 6절은 말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그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축복을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하나님과 그 영적 축복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게 되자 점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고생스럽게 사명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났을 때 모든 일이 그들의 기대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난과 전쟁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백성에게 영광스러운 목적을 두셨습니다. 이 목적과 희망 때문에 타락한 백성들을 연단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거룩한 훈련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훈련을 통하여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케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참기 어려운 고통 가운데서도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에게 붙여 연단하십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왕은 현명하였습니다.
그의 식민지 정책은 물리적인 힘으로 짓누르는 원시적인 방법이 아니라 고도의 문화정책이었습니다. 3, 4절을 보십시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며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을 데려 오게 하였고...." 곧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바벨론 궁중 특별 장학생을 선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입시의 선발 기준은 미국의 하버드대학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아주 까다롭습니다. 첫째는, 출신 성분이 좋아야 했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많고 잘 생겨도 왕족이나 귀족 출신이 아니면 제외되었습니다. 둘째는, 용모가 준수해야 했습니다. 몸에 문신이 새겨졌거나 수술받은 흔적이 있어도 안됩니다. 얼굴이 자유형이라도 안 됩니다. 셋째는, 능력이 많고 학문에 자질이 겸비되어야 했습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무엇입니까? 4b,5절을 보십시오.
이들에게는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이는 당시 최고의 선진국의 학문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큰 특권입니다. 학문에 익숙한 젊은 청년들에게는 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고국에서 못다 발휘한 이들의 재능과 능력을 이제 선진국에서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들에게는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를 공급하게 했습니다. 가난한 유다 땅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각종 궁중요리들 , 팔보채, 샥스핀, 제육 불고기, 해물 삼색전, 곰발바닥 요리, 갈비찜들이 때마다 공급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바벨론의 왕자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3년을 교육받게 되면 그 후에는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 하였습니다. 이들의 장래는 완전히 보장되었습니다. 이들은 엘리트중의 엘리트들로서 장래가 보장된 화려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런 특권을 받은 자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특권을 주는 데는 무서운 책략이 있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환관장은 이들의 이름을 모두 바벨론식으로 고쳤습니다. 다니엘은 벨드사살,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그리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습니다. 본래 이들의 이름은 모두 하나님의 성품과 주권을 나타내는 이름이었으며 선민의 identity를 나타내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바벨론의 신들의 이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의 혼을 빼버리고 바벨론의 우상의 아들로 바꾸어 버리고자 하는 데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환경이 어려울 때는 신앙적으로 살아 있게 됩니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믿음의 중심을 지킵니다. 그러나 환경이 좋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특별 대우를 받게 되면 마음이 부요하게 되어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됩니다. 회개하기를 싫어하고 십자가 지기도 싫어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신자의 중심도 빼앗기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되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학생 때는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잘 살다가도 졸업을 하고 세상에 나오면 세상의 좋은 것들 때문에 순수한 믿음이 흐려지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상황이 어려울 때 보다 좋을 때가 믿음의 중심 지키기가 더 어려움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도 인간적으로는 이 보다 더 큰 행운의 기회가 없었지만, 영적으로는 큰 위기의 때였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무엇을 했습니까?
다니엘의 믿음의 결단(8)
8절을 보십시오. "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다니엘은 이런 위기의 때에 작은 결단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다니엘을 통하여 몇 가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처음부터 뜻을 정하고 출발하였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절망하고 자기 연민에 빠져 슬퍼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이 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뜻을 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대처해 나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투쟁 방향이 없어지고 인생을 막연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그때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가장 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처음부터 뜻을 정하고 출발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므로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사람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작지만 구체적으로 뜻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정한 뜻은 결사대를 조직화여 바벨론 정부에 반기를 드는 것 같은 엄청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런 결단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입니다. 레위기 3:17에는 가축의 피를 흘려 만든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출애굽기 34:15에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이런 음식을 먹지 않으므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욕심이나 일시적인 감정에 기초하여 너무 큰 뜻을 정하므로 감당하지 못하고 죄의식에 시달립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막연하게 뜻을 정하여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만드시 해야 하고 또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뜻을 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뜻을 정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입니다. 또한 잘 먹어야 하나님의 일도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름지고 맛있는 왕의 진미를 거절하고 채식만 한다는 것은 분명한 가치관이 없다면 힘든 일입니다. 이뿐 아니라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는 것은 단순히 먹고 싶은 음식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뜻을 거부하는 무서운 행동이었습니다. 만일 이 사실이 왕에게 알려지게 되면 이들이 궁중 특별장학생으로서 받은 모든 특권을 다 박탈당하게 됩니다. 하고 싶어 하던 학문도 더 이상 못하게 됩니다. 비참한 포로의 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더 나아가 목숨까지 잃어버리게 될지 모릅니다. 이들이 뜻을 정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에 따르는 대가는 너무나 커 보입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어떻게 뜻을 정할 수 있었으며 그가 정한 뜻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첫째로, 그는 바벨론 왕 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은 눈에 보이고 그 영향력은 아주 가까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이런 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와 그 백성을 느부갓네살왕에게 부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 주권 편에서 보았습니다.
둘째로, 그는 바벨론의 법도 보다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비록 패망한 나라의 젊은 청년으로서 포로로 잡혀 왔지만 하나님의 선민의 혼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처음부터 이를 지키고자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그 증거로 그는 바벨론의 법도 보다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의 법도와 하나님의 법도 사이에서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세상은 인본주의 법도를 지
키기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기 때문에 이에 복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도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를 섬기도록 명령합니다.
또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합니다. 신자도 물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불신자와의 차이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바치는 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살아가든지 상관하지 않고 나만큼은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고자 할 때 비로소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이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자 결단한 것입니다. 그는 대 바벨론 제국 궁중 특별 장학생으로 선발될 만큼 인간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젊은이였습니다. 그가 지금까지는 나라를 잘못 만나 그의 학식과 재능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 배려로 선진국으로 와서 이곳에서 인정을 받아 이제는 얼마든지 하고 싶었던 학문을 하며 자신의 인생 청사진을 실현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는 포로 신세인 자기에게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바로 이때 이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자 결단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하므로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라도 하나님을 잃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그의 결단은 어리석어 보이고 너무 무모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가 현명한 결단을 하였음을 말해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좋은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믿음도 잃어버리고 하나님도 배반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실을 잘 아시고, 광야 훈련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해서 교훈을 주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명기 6:10-14) 우리가 하나님의 축
복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투쟁해야 할 제목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결단과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넷째로, 믿음을 순수하게 지키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는 우상 숭배에 바쳐진 음식으로 그의 믿음의 순결을 잃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순수하게 지키는 것은 절개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다니엘의 작은 결단은 아주 작은 일같이 보입니다. 그의 결단은 마치 태평양 바다에 돌을 하나 던지는 것 같이 아무런 의미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앞에서 결단했을 때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도 타락한 백성의 한 사람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결단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위대한 결단이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결단하였을 때 그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은 바벨론 문화 속에서도 타락하지 않고 선민의 믿음의 중심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 결단은 작은 것이었지만 다니엘에게는 죄악의 탁류 속에서 구원의 밧줄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영향을 이기고 오히려 영향을 끼치는 history maker가 되었습니다. 그의 결단은 그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모든 세대,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결단 없이 막연하게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에 정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도 어쩔 수없이 이중생활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핍박이 있거나 세상의 좋은 것들이 있으면 쉽게 마음을 빼앗겨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부족하더라도 마음에 정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이 시점에서 다니엘과 같이 작지만 구체적으로 뜻을 정하고 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뜻을 정하고 출발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9-21)
하나님은 다니엘이 믿음의 결단을 하였을 때 혼자 잘해보도록 내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결단을 지킬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승리하도록 여러 모양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첫째,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환관장은 은혜와 긍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맡은 바 직분을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무정하고 무자비하게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초기에 군기를 잡아 놓아야 일하기가 수월합니다. 그런데 이런 환관장이 다니엘과 그 친구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믿음의 결단을 잘 지키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십니다.
둘째,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얼굴을 더욱 윤택하게 하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환관장은 다니엘의 믿음대로 하도록 하는 것은 좋은데 그렇게 할 경우 고민이 있습니다. 그것은 채식만 할 경우 다른 동무들보다 얼굴이 나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왕의 명령을 어긴 것이므로 그의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다니엘은 열흘 동안 시험한 후 결정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감독하는 자는 이를 받아들여 열흘 동안을 시험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15, 16절을 보십시오.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 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이 말씀은 결국 다니엘이 믿음의 승리를 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들의 얼굴을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게 하십니다. 자기 욕심대로 사는 자는 그 얼굴이 굳어 있고 보기에 흉합니다.
셋째, 지혜와 총명을 주셨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하나님은 다니엘과 그 친구들에게 영적인 눈을 허락하셔서 영적인 일들을 깨달아 알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전심으로 찾고 그를 사랑하는 자와 함께 하시고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궁중 특별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으므로 이상과 몽조를 아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시자 이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20,21절을 보십시오.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다니엘은 고레스 원년까지 있으니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자 이들은 세상 지혜자들 보다 그 지혜와 명철이 열 배나 좋았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결단을 하고 믿음으로 사는 이들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자기의 능력이나 지혜를 믿고 사는 사람들은 그때그때는 승리하는 것 같지만 지내놓고 보면 후회와 허무만 남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영광과 명예를 얻는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풀의 꽃과 같이 곧 시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고 사는 사람은 그때그때는 손해보고 아픔이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의 편이 되셔서 도와주시므로 반드시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말씀에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믿음의 결단을 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결단을 하지만 연약하여 이를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이 모든 결단을 지키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께서 믿음의 결단을 한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한 사람의 믿음의 결단은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큰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 믿음의 사람들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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